함부로 인연을 맺지마라.
진정한 인연과 스쳐가는 인연은 구분해서 인연을 맺어야 한다..

진정한 인연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좋은 인연을 맺도록 노력하고..

스쳐가는 인연이라면
무심코 지나쳐 버려야 한다..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헤프게 인연을 맺어 놓으면
쓸만한 인연을 만나지 못하는 대신에
어설픈 인연만 만나게 되어
그들에 의해 삶이 침해되는 고통을 받아야 한다..

인연을 맺음에 너무 헤퍼서는 안된다..
옷 깃을 한 번 스친 사람들까지
인연을 맺으려 하는 것은 불필요한 소모적인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접촉하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지만
인간적인 필요에서 접촉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주위에 몇몇 사람들에 불과하고
그들만이라도 진실한 인연을 맺어 놓으면
좋은 삶을 마련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진실은 진실된 사람에게만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좋은 일로 결실을 맺는다..
아무에게나 진실을 투자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상대방에게 내가 쥔 화투 패를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다름없는 어리석음이다.

우리는 인연을 맺음으로써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피해도 많이 당하는데
대부분 피해는
진실 없는 사람에게
진실을 쏟아 부은 댓가로 받는 벌이다..

-故 법정 스님-

Posted by 가을고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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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기만 하고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사물의 이치를 밝게 깨닫지 못하고,
생각할 뿐 배우지 않으면 독단에 빠지기 쉽다.
-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論語》


  근자에 와서 <자기계발(自己啓發)>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도 정착(定着)되어 가고 있다.
  이 말의 출전(出典)은 《논어》이다.


󰋫 <계발>의 원래의 뜻
  공자(孔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가르침을 받는 자가 분발하지 않으면 계도하지 않는다.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여 고심하는 사람이 아니면 이를 인도하여 통하게 하여 주지 않는다. 네모난 것의 한쪽 모서리를 가르침 받으면, 나머지 세모서리를 자신이 생각하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것도 알려고 애쓰지 않는 자에게는 이미 무엇을 가르쳐도 헛일이다. 그럴 필요는 없다. (不憤不啓. 不悱不發. 擧一隅不以三隅反則不復也)>
  열정이 없는 자에게 결실은 없다. 배우는 자 스스로가 터득하려고 무한 애쓰는 사람이라야 스승의 가르침으로 미묘한 이치에 도달할 수 있으며, 그러한 열심이 없다면 이를 계도(啓導)하여도 헛 일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불분불계, 불비불발(不憤不啓. 不悱不發)>의 본래의 뜻이다. 그리고 이대목이 <계발(啓發)>이라는 말의 어원(語源)이 되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계발>이란 것은 본인 스스로가 해야겠다는 열정이 밑바닥에 있을 때 비로소 성립되는 것이라 하겠다.
  공자는 또 다음과 같은 말로 이를 강조하고 있다.
  <어찌하면 좋을까, 어찌하면 될까 하고 진심으로 구하고 있는 자가 아니라면 나로서도 그 사람을 어찌 해 줄 수가 없다(不曰如之何, 如之何者, 吾末如之何也已矣>
  자신이 마치 강요하는 것 같은 일은 입에 담지 않는다. 상대의 의욕과 열성에 응해서 계발해 준다. 이것이 공자의 기본적인 교육방침이었던 모양이다.
  물론 공자의 제자라 할지라도 그 모두가 의욕에 불타는 인간만은 아니었다. 예를 들면 재여(宰予)라는 제자가 있었다. 변설(辯舌)에 있어서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나, 학업에는 그다지 의욕을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 재여에 대하여 공자는
  < 썩은 나무에는 조각할 수 없다. 나태하고 정신이 썩은 사람은 가르치는 것도 불가능하다.(朽木不可雕也)>라고 말하면서 단념하였다고 한다.


󰋫 실천적인 <공자의 학문>
  그렇다면 배우는 측에서 말한다면, 의욕 이외에 어떠한 마음가짐이 필요한가. 우선 참고가 되는 것이 표제로 쓴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라는 가르침이다. 표제에서 풀이하여 게재한 바 있으나 이를 좀더 부연해서 말한다면 “독서에만 몰두하고 사색(思索)을 게을리하면 독선적으로 된다. 요컨대 책을 읽는 일과 자신의 머리로 생각해서 소화하는 일, 이 양면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공자의 입장에서 배운다는 것은 , 단지 책을 많이 읽어서 책벌레가 되는 일이 아니며, 거기에서 실천적인 지혜를 끌어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공자는 또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선배에게 글을 배우고 항상 되풀이하여 익히니,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不亦說乎)>
  한 번 배우면 그것으로 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실제로는 잘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회 있을 때마다 복습하게 되면 그 참뜻을 알게 된다. 또한 실천을 통해서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 체득의 기쁨이야말로 무상(無上)의 기쁨이며 참된 기쁨이다.
  공자는 또 이렇게도 말하였다.
  <자신과 다른 두 사람이 행동을 함께 하거나 혹은 어떤 일을 함께 행하면 내게 있어서 그들은 모두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다.(三人行, 必有我師焉)>
  <삼인(三人)이란 반드시 세 사람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 가령 나 자신과 공동으로 작업을 할 때, 다른 사람의 선(善)을 보면 이를 따르고, 다른 사람의 불선(不善)을 보면 반성하게 되므로 그 선․불선을 행하는 자가 모두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또 공자는 해야할 일은 척척 해치우고, 발언에는 책임을 지고, 그 방면의 선배에게 사사(師事)하여 독선에서 탈각하는 일, 이것이 학문을 하는 일의 의의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은 학문하는 자는 물론이거니와 사회인으로서의 필수 조건이라고 말하여도 좋을 것이다.
  공자가 지향한 학문이란, 매우 실천적인 것이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 고인(古人)의 지혜는 단지 지게미일 뿐
《장자》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옛날, 제(齊)나라의 환공(桓公)이라는 군주가 서재에서 독서하고 있었을 때의 일이다. 마당에서 일을 하고 있던 윤편(輪扁)이란 자가 일손을 쉬고 말을 걸어 왔다. 윤편은 수레를 만드는 목수이다.
  “임금님, 그 책에는 대관절 어떤 일이 씌어 있습니까?”
  “이것 말이냐, 성인의 가르침이란다.”
  “그 분은 지금도 살아 계시오니까?”
  “아니다, 벌써 오래 전에 돌아가셨느니라.”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거기에 씌어 있는 것은 옛날 사람의 지게미와 같은 것입니다요.”
  “지게미라고? 목수 주제에 무슨 망발이냐. 변명이 된다면 용서하겠거니와 그렇지 못하면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할 것이니라.”
  안색을 달리한 환공에게 목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저는 단지 오랜 세월 일의 경험에서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옵니다.
  예를들어 말씀드린다면 수레의 굴대받이는 수레바퀴보다 커도 아니 되며 작아도 아니 되옵니다.. 양쪽을 빈틈없이 맞추어야 합니다. 이것은 요령을 터득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 요령은 말씀으로는 설명할 수 없읍니다만 결코 우연을 의지 해서는 아니 되옵니다. 제 자식놈에게 어떻게 해서라도 그 요령을 터득시키려고 했읍니다만 잘 되지 않사옵니다. 그러한 까닭에 나이 칠십인 이 늙은 놈이 굴레받이만은 아직도 제가 만들고 있사옵니다.
  옛날의 훌륭하신 분들께서도 가장 요긴한 일들은 말씀 못하시고 돌아가신 게 아닐까요. 그렇다고 한다면 임금님께서 읽고 계시는 책도 옛날 사람의 지게미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목수의 말 중에서 중요한 대목인 《장자》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임금님께서 읽고 계신 것은 옛 성현의 지게미일 뿐입니다.(君之所讀者, 古人之糟魄已)>
  오묘한 진리는 말이나 문장으로 전하기는 어려운 일이며, 또한 고인은 이미 죽고 없으므로, 남아있는 말이나 문장은 그 정수(精髓)를 잃어버린 지게미와 같은 것이라는 말이다.
  현대에 있어서도 기술의 노하우라든가, 경영의 육감 등은 이 목수가 한 말이 그대로 적용된다고 보아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책벌레가 된다면 모처럼 애써 얻은 지식도 쓸모가 없어진다.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소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자기 계발>만 하더라도 잡다한 지식을 모아놓기만 하면 단지 박식(博識)한 사람으로 그치고 만다. 자기계발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실천에 도움이 되도록 지향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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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을고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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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의 뿔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게 폭력을 쓰지 말고, 살아 있는 그 어느 것도 괴롭히지 말며, 또 자녀를 갖고자 하지도 말라. 하물며 친구이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만남이 깊어지면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는 고통이 따르는 법. 사랑으로부터 근심걱정이 생기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친구를 좋아한 나머지 마음이 거기 얽매이게 되면 본래의 뜻을 잃는다. 가까이 사귀면 그렇게 될 것을 미리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註) ‘본래의 뜻’이란 자기가 목적한 바를 뜻한다.

자식이나 아내에 대한 집착은 마치 가지가 무성한 대나무가 서로 엉켜 있는 것과 같다. 죽순이 다른 것에 달라 붙지 않도록,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묶여 있지 않는 사슴이 숲속에서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듯이, 지혜로운이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동행이 있으면 쉬거나 가거나 섰거나 또는 여행하는 데도 항상 간섭을 받게 된다. 남들이 원치 않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동행이 있으면 유희와 환락이 따른다. 또 그들에 대한 애정은 깊어만 간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 싫다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사방으로 돌아다니지 말고, 남을 해치려 들지 말고, 무엇이든 얻은 것으로 만족하고, 온갖 고난을 이겨 두려움 없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출가한 처지에 아직도 불만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출가하지 않고 집에서 수행하는 재가자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흔히 있다. 남의 자녀에게 집착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잎이 진 코빌라라 나무처럼, 재가 수행자의 표적을 없애버리고 집안의 굴레를 벗어나 용기 있는 이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註) 코빌라라 나무는 흑단의 일종. ‘재가 수행자의 표적’은 머리, 수염, 흰 옷, 장식품, 향료, 처자와 하인이 있는 것을 말함.

만일 그대가 지혜롭고 성실하고 예의 바르고 현명한 동반자를 얻었다면 어떠한 난관도 극복하리니, 기쁜 마음으로 생각을 가다듬고 그와 함께 가라.

그러나 만일 그대가 지혜롭고 성실하고 예의 바르고 현명한 동반자를 얻지 못했다면 마치 왕이 정복했던 나라를 버리고 가듯,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우리는 친구를 얻는 행복을 바란다. 자기보다 뛰어나거나 대등한 친구는 가까이 친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친구를 만나지 못한 때는 허물을 짓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금세공이 잘 만들어 낸 두 개의 황금 팔찌가 한 팔에서 서로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註) ‘두 개의 황금 팔찌가 한 팔에서 서로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는 팔찌가 하나일때는 소리가 나지 않지만 두 개 이상일 때는 서로 부딪혀 소리가 나는 것과 같이, 여럿이 함께 있으면 시비가 생기고 번거로우니 혼자서 수행하라는 뜻이다.

이와 같이,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잔소리와 말다툼이 일어나리라. 언젠가는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미리 살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욕망은 실로 그 빛깔이 곱고 감미로우며 우리를 즐겁게 한다. 그러나 한편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욕망의 대상에는 이러한 근심 걱정이 있는 것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것이 내게는 재앙이고 종기이고 화이며, 질병이고 화살이고 공포이다. 이렇듯 모든 욕망의 대상에는 그와 같은 두려움이 있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추위와 더위, 굶주림, 갈증, 바람, 그리고 뜨거운 햇볕과 쇠파리와 뱀. 이러한 모든 것을 이겨내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마치 어깨가 떡 벌어진 얼룩 코끼리가 그 무리를 떠나 자유로이 숲 속을 거닐 듯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연희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잠시 동안의 해탈에 이를 겨를도 없다. 태양의 후예가 한 이 말을 명심하여,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註) ‘잠시 동안의 해탈’이란 세간적인 선정禪定이라는 뜻으로, 그것을 얻었을 때만 잠시 잡념으로부터 놓여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다. ‘태양의 후예’는 부처님을 가리킨다.

서로 다투는 철학자들의 논쟁을 초월하여 진정한 깨달음의 도를 얻은 사람은 ‘나는 지혜를 얻었으니 이제는 남의 지도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알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내지 말고 속이지 말며, 갈망하지 말고 남의 덕을 가리지도 말며, 혼탁과 미혹을 버리고 세상의 온갖 집착에서 벗어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의롭지 못한 것을 보고 그릇되고 굽은 것에 사로잡힌 나쁜 친구를 멀리하라. 탐욕에 빠져 게으른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널리 배워 진리를 아는, 생각이 깊고 현명한 친구를 가까이 하라. 그것이 이익이 됨을 알고 의심을 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세상의 유희나 오락 또는 쾌락에 젖지 말고 관심도 갖지 말라. 꾸밈없이 진실을 말하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아내도 자식도 부모도 재산도 곡식도, 친척이나 모든 욕망까지도 다 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것은 집착이구나. 이곳에는 즐거움도 상쾌함도 적고 괴로움뿐이다. 이것은 고기를 낚는 낚시이구나.’ 이와 같이 깨닫고, 지혜로운 자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물 속의 고기가 그물을 찢듯이, 한 번 불타 버린 곳에는 다시 불이 붙지 않듯이 모든 번뇌의 매듭을 끊어버리고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눈을 아래로 두고, 두리번거리거나 헤매지 말고, 모든 감각을 억제하여 마음을 지키라. 번뇌에 휩쓸리지 말고 번뇌에 불타지도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잎이 져 버린 파리찻타 나무처럼, 재가자의 모든 표적을 버리고 출가하여 가사를 걸치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여러 가지 맛에 빠져들지 말고 요구하지도 말며 남을 부양하지도 말라. 누구에게나 밥을 빌어먹고 어느 집에도 집착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마음속의 다섯가지 장애물을 벗어 던지고 온갖 번뇌를 버리고 어느 것에도 의지하지 않으며 욕망의 고리를 끊어 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전에 경험했던 즐거움과 괴로움을 모두 던져 버리고, 또 쾌락과 근심을 떨쳐 버리고 맑은 고요와 안식을 얻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최고의 목표에 이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마음의 안일함을 물리치고 수행에 게으르지 말며, 부지런히 정진하여 몸의 힘과 지혜의 힘을 갖추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홀로 앉아 명상하고 모든 일에 항상 이치와 법도에 맞도록 행동하며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무엇이 근심인지 똑똑히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집착을 없애는 일에 게으르지 말고, 벙어리도 되지 말라. 학문을 닦고 마음을 안정시켜 이치를 분명히 알며, 자제하고 노력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빨이 억세며 뭇 짐승의 왕인 사자가 다른 짐승을 제압하듯이, 궁핍하고 외딴 곳에 거처를 마련하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자비와 고요와 동정과 해탈과 기쁨을 적당한 때를 따라 익히고, 모든 세상을 저버림 없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욕과 혐오와 어리석음을 버리고, 속박을 끊고 목숨을 잃어도 두려워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친구를 사귀고 또한 남에게 봉사한다. 오늘 당장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그런 사람은 보기 드물다. 자신의 이익만을 아는 사람은 추하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타니파타 중>

Posted by 가을고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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